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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추억 - 의식의 흐름대로 막 써내려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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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겨울은 내게 유난히 쓸쓸한 느낌을 준다. 겨울이라고 해봐야 눈이 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고 당연히 얼음은 얼지 않는다. 내가 만난 호주 국적의 친구들은 평생 눈을 보는 게 소원인 경우도 많았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코리아라는 나라에 가서 꼭 눈을 보고 싶다는 말을 들은 게 셀 수 없이 많다. 춥지 않는 날씨지만 쌀쌀함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시원한 것 보다는 조금은 찬 바람이 옷 속으로 파고 들 때, 한국에서의 가을을 느끼는 것 같다. 감성적인 내가 계절을 타는 이유일까? 먼 타국의 겨울이 더욱 쓸쓸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한국의 밤보다 화려하지 않아서 일지도 모른다. 아침 일찍 영업을 시작한 가게들은 오후 3시면 문을 닫기 시작하고 그만큼 거리에 사람이 줄어든다. 나는 밤 9시까지 영업하는 레스토랑에서 요리사로 일했다. 호주에서 셰프로 일하는 것은 한국과는 다르다. 업장마다 시스템은 모두 다르지만 키친핸드라고 부르는 주방일 도우미의 존재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물론 그들 입장에서는 셰프가 피를 거꾸로 솟게 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성격이 나쁜 셰프는 바쁘고 힘이 들면 후라이팬을 집어 던지기 일쑤였고 그들은 그걸 주어다 치워야 했다.

내가 근무했던 곳도 키친핸드가 설거지 및 모든 주방 정리를 했다. 덕분에 나는 마지막 오더를 마무리하면 퇴근할 수 있었다.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지만 서두르지 않으면 집으로 가는 마지막 버스를 놓친다. 내가 사는 곳으로 향하는 버스는 유난히 빨리 끊겼다. 모두가 시티라고 부르는, 그러니까 우리말로는 시내에서 일을 하면 직접 운전해서 출퇴근을 하는 일이 어렵다. 주차 문제 때문이다. 주유비는 저렴하지만 주차비는 비싸다. 그렇게 나는 항상 막차를 타고 종일 파스타와 씨름한 기름진 몸으로 퇴근을 했다.

왜 그랬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버스 안에서 브로콜리 너 마저의 음악을 즐겨 들었다. 가끔은 슬픈 멜로디에 감정이 복받치면 신세 한탄을 하곤 했다. 한국에서는 내가 아름다운 나라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는 걸로 오해하곤 하는데, 사실 나는 그냥 외국인 노동자일 뿐이었다. 해변에 있는 카페에 간 사진을 SNS계정에 올려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사람들은 낯선 곳을 선망하는 경향이 있다. 서울에서는 해변에서 커피를 마시는 일이 쉽진 않겠지만 호주에는 강남역 같은 곳은 없다. 맛이 기막힌 순대국도 부대찌개도 없다. 위에 말했듯 밤 늦게까지 버스도 다니지 않으니 영 불편할 수가 없다.

또 하나가 언어의 문제다. 영어공부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영원히 외국어고 나는 외국인이다.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외국인이 아무리 한국말을 잘 한다 할지라도 당신보다 잘 할 수는 없다. 그 외국인에게 외롭지 않냐고 물어본다면 열에 아홉은 그렇다고 말하지 않을까? 언어가 아무리 의사사통이 목적이라지만 인생이란 말 몇 마디 주고받는 게 전부가 아니다. 모든 문화를 흡수하기란 쉽지 않다. 내 안에는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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